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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많은 나라에서 석면을 다루던 노동자들이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석면이 위험한 물질인줄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그들은 석면이라는 이름만 알았을 뿐 그것이 발암물질인 줄 전혀 몰랐다. 석면의 유해성에 대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석면가루가 쌓인 현장에서 도시락을 먹고 심지어 살림집이 공장과 붙어 있기도 했다. 죽어라 일만 했던 그들에게 20~30여 년 후 돌아온 것은 불치의 암과 석면폐였다.

 

인체에 치명적인 ‘공포의 시한폭탄’
그리스어로 ‘불멸의 물질(asbestos)’을 뜻하는 석면은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가늘고 긴 섬유다. 100만 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발생된 화성암의 일종으로 사무석ㆍ각섬석 등의 천연 광물에서 추출된다. 석면은 단열, 피복, 내부식성 등이 뛰어나 건축자재,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 슬레이트 등 무려 3000종류 이상의 제품 재료로 쓰이면서 1960~1970년대만 하더라도 ‘마법의 물질’, ‘하늘이 내린 선물’로 불렸다. 하지만 석면폐ㆍ폐암ㆍ악성중피종 등 치명적 질병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 등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남원 교수는 “석면은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제시한,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실한 1급 발암물질 27종 중 하나”라고 하면서 “석면 제품을 만들거나 쓰거나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마시게 되면 일단 암에 걸릴 가능성을 안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같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석면 먼지가 일단 몸에 들어가면 그 튼튼한 물성 때문에 절대 빠지지도 녹지도 않은 채 평생 몸 안에 머무르면서 조직과 염색체를 손상시켜 암을 일으킨다”며 다른 발암 물질보다 석면이 더욱 위험한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석면을 20년 이상 취급한 사람의 폐암 발생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0배나 높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석면 먼지에 오염된 환경 속에서 지내면 비흡연자보다 폐암에 걸릴 확률이 53배나 높아지게 된다.
이처럼 잠복기가 긴 석면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시에 수많은 사망자를 양성한다. 특히 석면 먼지가 조직을 뚫고 늑막이나 복막까지 들어가서 생긴다는 중피종암은 발병 1년 안에 사망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석면 범벅 학교, 석면공포는 ‘현재진행형’
우리나라는 2009년 1월부터 석면 사용이 금지됐지만, 우리 주변에서 석면의 위험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국 학교 건축물의 90% 이상이 석면 함유 자재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지하철, 노후한 건축물 등에도 석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전주시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석면검출 검사를 실시한 결과 5개의 교실 중 3개에서 기준치(0.1%)의 70배에 달하는 농도(0.5∼7.0%)의 백석면이 검출됐다.

또 수원과 대전의 석면제품 공장주변 1㎞ 내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1,1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8명이 석면관련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석면광산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 4천5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도 413명(석면폐증 환자 179명, 폐암 환자 7명, 흉막반 환자가 227명)이 석면관련 질병을 앓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석면의 사용은 금지됐다고 해서 그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나 석면 제품을 사용했던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 석면 슬레이트 지붕 철거나 건축물의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석면 가루로 인해 일부에서는 석면 배출량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석면의 공포는 201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석면 교육’ 강화하고 제거 작업 서둘러야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석면의 유해성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해 무방비로 죽음의 먼지를 들이마시고 있다. 석면을 해체ㆍ제거하는 노동자들만 석면에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석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노동자들도 석면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배관수리공이나 냉난방공사 인부, 초고속망 설치 기사 등도 작업을 하면서 석면에 노출될 수 있다. 웬만한 사무실이나 상가의 천장과 벽체는 석면이 함유된 건축자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기드릴 등으로 천장과 벽 구멍을 뚫는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에게서 석면 흡입을 막아주는 특수방진마스크나 보호복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자도 석면을 잘 모르고 회사도 이들을 교육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잘 몰랐다고 말하면 면죄부가 주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코울스키 가족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획기적으로 석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 단순한 공포심 조장은 지양하되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고 하루 빨리 석면 해체ㆍ제거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전국석면환경연합회장 안종주 박사는 <석면공해, 조용한 시한폭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우리는 눈앞에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면서도 무지 때문에 깨닫지 못했던 문제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석면 공해 문제가 바로 우리들의 이러한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무지 때문에 나 자신과 이웃이 죽어가고 있는 것도 큰 죄악이지만 그것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큰 죄악이다.”

    

 

출처: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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